박래전의 유서 2

어두운 시대 태어나 참 인간이고자 했던

작은 사람의 아들이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드립니다.

학살원흉 노태우는 즉각 처단되어야 합니다.
8년전 이 땅을 피비린내로 진동하게 했던 학살의 원흉이 대통령의 권좌에 앉아 있습니다. 엄청난 부정과 사기극을 연출하여 대통령의 권좌에 오른 노태우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구로의 학살이었고 이제 와서는 그 피묻은 손으로 광주항쟁의 진상 운운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살인자가 대통령의 권좌에 눌러 앉아있는 나라가 이 지구상의 어디에 있으며 자신과 학살의 주범들은 역사의 심판대에 올려져야 함에도 그 자들의 입으로 학살의 진상운운 하는 경우가 또 어디에 있습니까? 
국민여러분! 노태우의 광주항쟁 진상규명은 그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권력다툼의 무기로 이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보수야당―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에 의한 제5공화국 비리 폭로나 광주항쟁의 진상 규명 역시 올리핌 이후에 재신임을 묻겠다는 노태우의 떡고물을 주워 삼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음에 다름 아닙니다. 또한 국정 조사권은 환상에 지나지 않으며 또다시 민중의 투쟁을 권력에 눈이 어두운 보수야당에게 팔아넘기는 작태에 지나지 않습니다. 
학살원흉의 심판은, 아니 처단은 이 땅 4천만 민중의 투쟁에 의해 설치되는 민중재판에 의해서 이루어질 때만 가능한 것이며 그때에만 광주의 원혼들은 구천을 맴돌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통일논의는 자유로이 보장되어야만 합니다.
항간에서 공동올림픽을 쟁취하자라는 것을 매개로 이루어지고 있는 조국통일의 운동은 44년 숙원을, 한많은 겨레의 염원을 풀고자하는 노력으로서 찬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청년학생만의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일부 정치권이나 정객들의 권좌를 위해 이용되어서는 더더욱 안됩니다. 통일논의는 모든 사람들의 고민 속에 범민중적으로 공유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공동올림픽의 환상은 깨어져야만 합니다. 
조국통일의 논의가 활성화되기까지 올림픽은 거대한 매개로서 위치지어지고 있습니다. 올림픽을 매개로 민족화해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은 일면타당성을 지닙니다. 국제 프롤레타리아주의의 무드가 평화의 조류로 흐르고 있고, 반전, 반핵 운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 흐름에만 매몰되어 한국에 있어서의 올림픽 역시 그 속에서만 파악하려고 할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88올림픽은 한반도 6천만 민중에게 있어서 철저한 탄압과 착취의 계기로 작용한다는 사실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혁명가들이(?) 가져야할 올바른 자세는 반민중적 올림픽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반민중적 올림픽 반대 투쟁의 기치를 치켜듦과 동시에 한반도의 영구분단을 획책하는 군사파쇼와 미제의 음모에 철퇴를 가해야 합니다. 올림픽은 민중적으로, 분단올림픽 결사반대, 이것이 올림픽을 바라보는 올바른 투쟁인 것입니다 

모든 양심수는 즉각 석방되어져야 합니다. 
저는 먼저 간 조성만 동지의 외침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땅에 군사파쇼가 집권한 이후 내란음모죄, 국가보안법, 집시법 등 모든 악법이 들어서고 이런 것을 수행하는 폭압기구에 의해 구속되고 철창 속에서 신음하는 양심수가 지금 이 순간에도 차디찬 골방에 갇혀 있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 진정한 민중민주를 앞당기고자 노력했던, 진정 이 땅 6천만 민중의 아들, 딸이었습니다. 또한 국민화합 떠들어대는 노태우의 큰 목소리 밑으로 지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어 가고 있습니다. 
모든 양심수는 무조건 석방되어야만 합니다. 그들이 철 창 속에서 신음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분열의 씨앗은 제거하고 통일, 단결의 대오를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은연중 심어진 제국주의자와 군사파쇼의 분열 논리는 모든 운동권과 민중들의 분열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분열되었을 때 좋아하는 것은 이 땅을 지배하는 자들뿐 일 것입니다. 사소한 감정이나 작은 논리의, 사상의 차이에 매몰되지 말고 통일, 단결을 실제화시켜 내기 위한 작업에 즉각적으로 착수하십시오. 

이제 떠나려함에 마지막 부탁을 드립니다.
저의 뒤로 저와 같은 죽음이 뒤따라서는 안됩니다. 이제 더 이상 죽음은 우리의 손실일뿐입니다. 일치단결된 대오로 투쟁하십시오. 88년에 군사파쇼를 깨부수지 못한다면 우리의 투쟁은 얼마나 멀고 먼 가시밭길을 걸을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부모님, 형제, 준열이, 정주의 얼굴이 보입니다.
동지 여러분!
이 땅 4천만 민중여러분!
어두운 시대를 열정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한 인간이 여러분의 곁을 떠납니다. 87년 6월 투쟁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개량의 환상, 안일과 비겁을 깨뜨리고 투쟁의 대오를 굳게 하십시오. 
아직은 할 일이 많은 때 먼저 가는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죽어간 많은 사람들은 여러분의 투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광주민중항쟁 8년 6월 2일
숭실대학교 인문대 학생회장 박래전 드림


숭실의 인문 학우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이 저를 믿어주시고 제게 많은 기대를 했었는데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떠나야만 하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마지막 부탁을 드립니다. 제가 하고자 했던 사업의 모든 부분을 부학생회장인 윤은경양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를 중심으로 저의 숙원 사업인 알기 인문의 명예를 되찾는 것, 혁명의 대오에 선두를 달리는 인문대 학생회가 될 수 있도록 적극 보필해 주십시오. 거듭 죄송합니다.
이 땅에 민주주의가 오는 날 저는 환히 웃으며 돌아올 것입니다. 
김창섭 선배의 곁에 눕고 싶습니다. 
내 사랑하는 고향 숭실의 동산, 선배의 옆에서 여러분의 투쟁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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