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전의 유서 3

사랑하는 한반도의 백만학도에게

수많은 선배동지들이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투신으로, 분신으로, 고문에, 살인 최루탄에!
아아! 학우여!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쓰러져야 하는가? 
자유의 나무는 피의 양분을 먹고 자란다지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야 하는가? 
학우여! 
우리들 가슴에 손은 얹고 생각해 보자. 
하나의 죽음이 죽음으로서의 가치조차 가지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죽음을 죽음으로만 보아 넘기는 것이 진정 민주쟁취, 민족해방, 조국통일의 선봉에 선 이 땅 청년 학도의 모습이란 말인가? 
청년학도야말로 불의 앞에 분노하고 정의 앞에 의연한 이 땅의 최후의 양심이다. 
그러나 학우여!
오늘 우리는 비겁과 안일과 무감각의 늪에 빠져있다. 
탐욕과 이기주의에 눈이 어두워져 있다.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노동의 현장에서, 탄광에서, 농촌에서 군사파쇼의 총칼에 무참히 쓰러져 갈 때도, 청년학도의 발군을 촉구하며 온몸에 불을 붙였을 때도 희희낙락하며 눈앞의 쾌락을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 그것이 이 땅 청년학도의 오늘의 모습이다. 
진정 자주, 민주, 통일은 몇몇 소수의 염원인가!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며, 가장 소중한 목숨까지 바쳐가며 투쟁하던 열사들의 모습이, 학살원흉 처단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인가? 
들리지 않는가. 광주 영령들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는가. 세진이, 재호, 윤범, 성만, 덕수의 함성이. 
학우여! 
아직도 학살의 원흉은 권좌에 앉아 있고 그 피묻은 손을 휘두르며 위대한 노가리의 시대를 떠들어 대고 있다. 아직도 학살의 원격 조종자 미국은 핵무기와 수입개방의 칼날을 들이대고 이 땅을 노린내 나는 양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광분하고 있다. 
88올림픽이라는 화려한 전광판 밑에는 군홧발에 짓눌려 신음하는 우리의 부모, 형제, 자매들이 있다. 
학우여!
이제 나는 이 세계를 버리려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는 안되기에. 나의 죽음이 마지막 죽음 이길 바란다. 나의 투쟁이 이 땅 백만 학도에서 불을 당기는 투쟁이 되길 바란다. 
백만 학도여! 내 사랑하는 한반도의 아들딸들이여!
일어나라! 내부의 갈등과 반목과 질시의 허울을 벗어버리고 진정 민주의 시대, 민중의 나라, 통일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라!

백만학도 일치단결 군사파쇼 타도하자. 
잊지말자 광주를! 처단하자! 학살원흉

우리의 투쟁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순수함 그 자체여야 한다.
모든 정파에게 호소한다. 자신의 권위와 아집을 버리고 실제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한 작업에 즉각 철수하라! 
피눈물로, 마지막으로 호소한다. 
일어나라! 백만학도여! 나의 죽음을, 선배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나의 죽음이 마지막 죽음이길 바란다. 
6.10 총궐기로 군사파쇼타도의 불길을 높이 올리자! 
물러서지 말자! 물러서지 말자! 우리는 이긴다. 학우여! 학우여!

광주민중항쟁 8년 6월 2일
숭실대학교 제20대 인문대 학생회장 박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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