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전의 유서 1

어머님, 아버님께

천하의 몹쓸 불효자 막내가 드립니다.
이제 두 분의 곁을 떠나려 함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저를 길러주신 두 분, 피와 살을 나누어 저를 애지중지 길러주신 두 분.
두 분께 분명 저는 몹쓸 불효자입니다. 
그러나 어머님, 아버님. 
저는 두 분의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아니면 더 많은 어머님, 아버님들의 가슴을 에이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읍니다. 불을 지르거나 몸을 던지면서 죽어갔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더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도 저의, 사랑스러운 두 분의 
아들의 목숨을 민주의 성단에 바쳐야 합니다. 
지금 이 땅엔 노태우 군사독재 정권이, 8년 전 광주에서 우리의 형제, 
친지들을 찢어 죽였던 칼날을 가슴에 품고 또다시 피바람을 불러일으키려 
음모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뿐인 사랑하는 조국 한반도는 분단의 원흉 미국에 의해 
두들겨 맞고 칼부림당해 멍들어가고 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과 같은 이 땅의 부모들은, 두 분의 아들 같은 이 땅의 아들딸들은 
이러한 폭정의 발톱에, 살인마들의 만행에 피를 빨리며 야위어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죽어간 사람들은 어두운 세대, 세상을 잘못 만난 죄로, 아니 세상을 
바로잡으려 온몸을 던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버님. 
안타깝게도 먼저 간 친구들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아까운 목숨만을 던진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어머니, 아버님, 
그 사람들은 진정 어머님, 아버님 같은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 
래권이, 작은 엄마 같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모두가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외면당하고 말았습니다.
어머님, 심장병에 시달리시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일하시는 어머님.
아버님, 다리가 썩어 들어가도, 환갑이 넘어서도 일하시는 아버님.
저는 두 분 곁으로 돌아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올해로서 대학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두분 모시면서 고향에서 
올바른 듯을 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독히도 더러운 세상은 그 뜻마저도 이렇게 만들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습니다. 왜지요? 
사람들은 너무나 자기 안속만 차립니다. 기성세대들도 마찬가지고 청년학생들도 
역시 그렇습니다. 
다음의 세대에 우리들의 세대와 같은 비극이 닥쳐오리란 
생각들을 꿈에도 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 
어머님, 아버님, 
이 시대의 군부독재는 우리의 손으로 깨부수지 않으면 않됩니다. 또한 
미국놈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통일은 불가능합니다. 
어머님. 강하게 사세요. 비록 자식은 떠나지만, 제가 원했던 세상을 보기까진 
절대 눈감지 마세요. 
아버님. 엄하셨지만 다정했던 아버님, 건강하세요. 
썩어 들어가는 다리도 고치셔야죠. 
절대로, 절대로 저의 죽음을 비관하시지 마세요. 
지금은 슬프시겠지만 제가 원하는 그날이 오면. 두 분 부모님, 
아니, 그날이 오기까지 힘드시더라도 눈감지 마세요. 
어떻게든 살아서 아들과 함께 싸우는 이땅의 어머님, 아버님이 되세요. 
절대로 목숨을 버리시면 안됩니다.
어머님, 아버님, 모질게 먹은 마음이라 눈물조차 흐르지 않아요.
어머님, 아버님, 안녕히. 

6월 2일 
불효자 막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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